Sunday, June 28, 2009

머릿속이 하얘진다.

손이 굳고 있다.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난 그저

훨씬 더 많이 소설을 쓰고

훨씬 더 많이 원고를 그리고


그러고 싶다.



그래서 죽어라고

공부에만 매달리고 있는데,




그런데 손이 굳고 있다.




머릿속이 하얘진다.







믿어지지가 않아.

Tuesday, March 31, 2009

Feline#00 [서론/Prologue]

진정제가 든 커피는 식어가고, 벽거울로 위장한 큰 창문 너머에는 숨을 죽이고 있는 리거 (Leauger: JLA의 일원) 들이 둘의 행태를 살피고 있었다.
고양이의 후각은 갯과 짐승만큼은 아니더라고 생각 외로 뛰어나다. 그 결과로 그녀는 커피에는 손끝하나 대지 않았다. 그러나 옆의 벽거울이 창문이라는 사실은 알아채지 못한 것 같다. 기어코 자신을 불러낸 여자는 입을 열 생각은 없는듯이 자신의 몸짓 하나하나를 눈으로 열심히 쫓고 있었다. 이래서는 누가 심문을 받고있는지 조차 헷갈린다. 제길. 남자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좀 더 세게 나가봐야 한다....
약점을 찾아 파고들어야 한다. 그게 내가 잘 하는거니까.

"커피를 싫어하나?"
"저 안에 있는 진정제 냄새는 코를 찌를 정도예요."
"지금 네 꼴을 보기에 진정제가 필요한 것 같은데, 안그래?"

툭 던진, 냉소적인 그 한마디에 펠린은 조금 누그러진 (그러나 여전히 내키지 않는) 눈빛으로 앞에 놓인 커피잔을 슬쩍 바라보았다. 잠시 후 펠린은 당신을 믿어보죠. 하며 커피를 마셨다. 잔을 드는 가느다란 손가락. 세워진 새끼손가락.
아까는 쳐다보기도 싫어했던 커피를 자신이 권하자 금세 마시는 것을 배트맨은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은 좀 더 증거가 필요하다.
펠린은 금세 잔의 반을 비웠다.

"이름이 뭐지?"
"뭘까요?"
"너랑 장난 할 시간 없다."
"바쁘신가보군요."
"남자 주먹에 맞아본 적 있나?"
"내 이름은 알아서 뭐하게요. 그게 중요한가요?"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 하고 있지만 그러는 펠린의 얼굴은 어딘지 두려움을 담고 있었다. 배트맨은 밀없이 고개를 틀어 관절을 꺾어 소리를 냈다. 그 차가운 소리가 위협적으로 들렸는지 펠린은 순간 잠잠해졌다.

"이름이 알려져있나보지, 그래서 내빼는 건가?"
".....이름보다는 얼굴이 더 알려져있죠."

말꼬리를 흐리며 문장을 끝마쳤다.
순간 배트맨의 머리에는 몇가지의 직업이 정리되어 나타났다. 배우, 가수, 정치인. 이런 여자가 정치인으로 나섰다면 단연 눈에 띄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알고있는 한 고담의 정치인들 중에는 이런 젊은 여자가 없다. 독특한 목소리를 고려해보면 가수일지도 모른다. 배우, 가수로 좁혀졌다. 약간 마른 듯한 몸에 눈부신 각선미를 보니 모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사실을 체크한다. 이 여자는 그린 랜턴이나 다른 리거에게는 아예 입을 열지 않았다. 계속 배트맨이 아니면 한 마디도 않겠다고 했다.
분명 그녀의 약점은 바로 배트맨, 그의 존재다.

"직업은?"
"......"
"이봐, 잘 들어."

탁상을 치자 생각한 것보다 더 큰 소리가 났다.
처음으로 펠린이 미세하나마 흠칫 몸을 떨었다.

"네가 똑똑하다면 지금쯤 입을 여는 게 신상에 좋을 거란 걸 알고있을거다.
너같은 어린 여자애를 상대하긴 나도 싫으니 그만 버티고 빌어먹을 신상정보를 불어.
거친 방법을 쓰길 원하는 건 아니겠지."

냉정한 그 목소리에도 여자는 꼼짝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잠시 후 입술 사이로 새어나온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진정제의 효과가 드러나고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로군요."
"그래."
"좋...아요."

펠린은 빨간 혀로 입술을 적셨다.
건조해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샤....샨탈 아이다 휴어. (Chantal Aida Hugher)"
"나이."
"이번 12월에 스물 넷이에요."
"직업."
"런웨이 모델..."

빙고. 그러고보니 어디선가 본 듯한 착각은 착각이 아니었나보다.
아마 사업상 후원하던 브랜드의 런웨이에서였을 것이다.
관심이 없어서 있는 척 해야 했지만 지금은 그 브랜드가 고용한 모델이라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감시할 수는 있게 되었으니.

"...겸 배우.."

펠린이 덧붙였다.
엎친데 덮쳤군.

"가족."
"...없어요."

무덤덤한 듯한 그 한마디.

"커피 마저 마셔."
"진정제 필요 없어요."
"명령이다."
"제가 왜 당신 명령을 들어야 하죠?"

아까보다 공격적인 반응이다.

"범행동기를 불어."
".....범행....이라고...?"
"네가 일으킨 일은 정의가 아니야. 살인일 뿐이지."
"..그래..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펠린이 핏 비웃었다.
배트맨이 미간에 인상을 썼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상대가 살인자든 뭐든간에, 살인이 정의가 될 수는 없어."
"그래서 살려줬나요?"
"살인으로서 성립되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그래서 당신이 성립한 정의로... 범죄율이 줄어든 일이 있나요? 당신이 살려둔 범죄자들은 항상 다음의 악행을 꾸몄어요."
"그들에게는 여전히 1%의 가능성이 존재해."
"조커에게도 가능성이 있다고 믿나요?"

이러다간 끝이 없다.
펠린은 그의 행동으로 자신의 정의를 주장하고 있다.
이 난잡함을 끝내고..... 원인을 찾아야 한다.

"타락한 이유가... 그에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너에게도 있듯이."

그 말에 순간 펠린이 경직했다.

"갑자기 내 얘기는 왜 하는거죠?"
"글쎄, 내가 기억하기론 난 널 심문중이었어."
"무슨....."
"네 이야기를 해봐, 휴어."

어두운 조명 아래 어슴푸레 빛나는 여자의 푸른 고양이 동공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떤 심문과 협박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던 강인한 눈동자가 나직한 그 한마디에.

"네가 살던 이야기를 해봐. 무슨 일이 있었지?"
"......"

펠린은 아무 말 없이 배트맨의 억센 무릎께에 시선을 그쳤다. 시선을 피하고 있지만 어쨌든 드디어, 약점이 드러났다.
배트맨은 테이블 위에 걸터앉아 머뭇거리는 펠린을 응시했다. 입술이 열릴 때까지.
그러나 다시 입을 열기에 그녀는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자신의 10대 시절이 떠오르는 것은 괜한 일일까. 배트맨은 시선을 조금 누그러뜨렸다. 제자리걸음만 반복하는, 상처를 감추기 위해 반복하는 저항으로 가득했던 10대 시절. 그때의 자신을 닮았다, 이 여자는....
기억하기로는 24살을 갓 넘긴 이 여자는.

".......전"

드디어 갈라진 목소리가 터져나와 공기 속의 침묵을 메운다.
박쥐는 고양이를 주의깊게 바라보았다. 펠린의 혼란스러운 눈이 꺼질듯 빛났다.

"전 1985년의 겨울 파리에서 태어났어요."

펠린이 떨었다.
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아주고 싶은 충동과 싸워야 했다.

"....긴 이야기가 될 거예요."
"밤도 길어."

목소리가 꺼져가고 있었다.
말해. 늦지 않았어. 괜찮으니까.
너도 나도 아직은 늦지 않았어.

배트맨 앞에 포박당한 펠린은, 입술을 달싹이다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now start.